V For Vendetta

다시 한번 느끼는 거지만 워쇼스키형제 (또는 남매..)의 대사 작성능력은 최악입니다. 인간관계 전무한 골방지식인들의 머리속에서나 이루어질 법한 그 장황하고 허장성세 가득한 대사들이라니...


하지만 이런 유의 영화에는 다행스럽게도 예의 그 대사 때문에 주인공 'V'는 더욱  매력적이고 호감이 가는 캐릭터로 묘사됩니다.가면뒤에서 유장하게 리듬감 실어 웅얼거리면 숨도 한번 안 쉬고 자아도취적인 대사를 내뱉는 휴고위빙의 대사처리 솜씨는 가히 곡예를 연상케 하고 우스꽝스러운 가면에도 불구하고 동선은 적당히 과장스럽고 우아합니다.

개인적인 복수심을 대의명분으로 포장하여 사적/공적인 성취를 모두 이루는 음흉함도 가지고 있고, 가면 속 자신의 모습에 대한 콤플렉스를 지니고 있음에도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신사적이고 쾌활한데다, 한번 본 영화를 대사를 줄줄이 외울 정도로 거듭 재감상한다거나 광분하며 멀쩡하게 세워져 있는 갑옷과 칼싸움 놀이를 즐기는 귀여운 면모까지 지니고 있지요.

(더 붙이자면 불타서 무너지는 건물들 잔해를 헤치고 나오며 똥폼잡고 '우워워워~'외쳐주는 일본 애니메이션 스타일의 진부한 탄생배경도요..)


반면에 'V'이외의 등장인물들은 모두 기능적인 역할 밖에 못하는 뻣뻣한 종이인형 같은 작위적인 캐릭터 들입니다.. 아쉽게도요.

포스터만 보면 마치 'V'의 적극적인 조력자이자 여전사처럼 보이는 나탈리 포트먼의 '이비'의 역할역시 'V' (또는 워쇼스키 남매..)의 장광설을 열심히 경청해주고 학습해주는 학생에 지나지 않아요.나름 둘이서 춤도 추고 로맨틱한 분위기도 잡아보고 작은 갈등도 일으킵니다만 실제로 둘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교류라고는 'V'가 장광설을 늘어놓으면 '이비'는 "살면서 이렇게 기발 나고 참신한 이야기는 처음 들어봐~"는 듯한 표정으로 그 큰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열심히 들어주는 수준의 것들 뿐이니 무슨 정서적 감흥을 주겠어요.

또 한 명의 주요 인물이 나오긴 합니다만.뚜렷한 동인도 없이 그냥 열심히 뒷조사만 하고 다니며 적절한 시점에 플래시백으로 영화의 배경설정을 설명해주기 위한 용도의 캐릭터에요.그나마도 정작 중요한 이야기는 'V'가 찾아와서 다해주고 가버리지요.


주요 등장인물들이 이 모양 이니 이야기 전개에 무슨 갈등이 있겠어요.이놈의 영화 속 세계에서 뚜렷한 자기목표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건 'V' 뿐이고 나머지는 전부 'V선생'에 말씀에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열심히 동조해주거나 때맞춰 악당에 총탄에 쓰러져 관객에게 정서적 충격을 주기위함이나 주제의 선명성을 드러내기 위해 집어넣은 플래시백에서 순진한척하는 인물들뿐이라고요.


그나마 'V'와 열심히 싸워대서 볼거리를 제공해줘야할 악당 놈들의 꼬락서니라고는 통금시간 어긴 여자를 윤간하려 드는 쌍팔년도 한국영화 스타일의 양아치들이거나 변태성욕자에 호모포비아에 방송에서 하나도 웃기지도 않는 농담(영화 속 세계 사람들은 좋다고 자지러지기는 합니다만...)좀했다고 사람을 대수롭지 않게 쏴죽이는 파시스트들 뿐인에요. (거기다가 미녀들을 잡아들여서 빡빡이로 만들어버리는 만행까지도 저지르지요.....)

결정적으로 악당두목 이름은 '서틀러'에 '히틀러'와 거의 유사한 콧수염을 기르고 입만 열었다 하면 목에 핏대를 세워가며 악다구니를 쓰는 것까지 '히틀러'를 연상케 하는 놈이니.. 아이구.. 너무 대놓고 악당들이라 순진해 보일 지경입니다.


뭐 저는 캐릭터가 아무리 형편없고 이야기전개가 엉성하더라도 볼거리만 많으면 충분히 영화를 즐겨줄 용의는 있는 사람인지라 예의 장광설과 얄팍한 캐릭터 나올 때마다 속으로 열심히 비웃어주면 견뎌내기는 했습니다만 정작 볼거리라고 내세울만한 게 있는 영화인가 싶군요.

많이들 언급하시는 '도미노' 장면이나 '빅벤' 폭발장면같은 건 좋았어요.(사실 아이맥스 관에서 본 영화라 2시간 내내 폭죽터지는 장면만 빵빵한 사운드와 함께 나왔어도 저는 즐거웠을것 같습니다만...)

반면에 캐릭터들 간에 펼쳐지는 액션은 형편없습니다.밀짚단 처럼 뻣뻣하게 굳어있는 악당들 사이를 'V'가 온갖 폼 다잡으며 빙글빙글 돌며 그래픽 처리된 궤적을 보여주는 칼질해대면 예쁘장하게 피도 튀어오르고 살벌한 음향도 깔아주긴 합니다만.... 딱 등장인물들 간의 대사수준으로 일방적인 액션이라 싫더군요. 최소한의 'V'와 악당캐릭터 간의 동작의 교류는 이루어져야 할 거 아니냐고요......


PS 1 .생각해 보니 우리나라에서 리메이크하기 딱 좋은 영화군요. 시대배경은 군사독재 시절로 잡고 'V'의 캐릭터가 티비에 나와 "여러분~ 우리 미칩시다. 우리가 하나되서 미치면 해낼 수 있습니다! 돼한민국~~' 어쩌고 하면서 선동하면 마지막에 붉은악마 티셔츠를 입은 사람들이 광화문으로 몰려드는 스토리로요.....


PS 2.이 정도로 노골적으로 현 미국정부와 미디어에대한 은유를 해대는 영화가 미국에서 개봉되서 흥행순위 1위까지 오르는걸 보니 신기하군요.


PS 3. 약간의 스포일러...
마지막 액션이후 "네놈들의 총알로는 나의 신념의 벽을 뚫을수 없다..." 운운 하는 닭살돋는 대사 내뱉고나서는 슬그머니 옷안에 덧대어놓은 철판 끄집어 내는 'V'의 모습 보면서 영화보며 유일하게 웃었버렸습니다. ^^

by 어둠의왼손 | 2006/03/25 13:31 | 영화 이야기 | 트랙백(1)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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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잠보니스틱스 at 2006/04/02 17:04

제목 : 브이 포 벤데타
→공식홈페이지: 영어 / 한국어 세계 3차대전으로 인해 피폐해진 근미래의 영국. 애덤 서틀러 의장이 이끄는 독재정부가 정권을 휘어잡고 시민의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명분 아래 무자비한 감시와 통제를 행하는 가운데, 사람들은 별다른 생각 없이 현실에 순응하며 매일 매일을 보내고 있었다. 방송국 직원으로 일하던 이비 해먼드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스스로를 'V'라고 부르는 기묘한 인물과의 만남이 그녀의 인생을 송두리째......more

Commented by 잠본이 at 2006/04/02 17:05
일방적으로 다가와서 샤샤샥 베어버리는 그 장면 보고 '저인간은 사이보그 009처럼 가속장치라도 갖고있는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광장에 모인 시위대는 촛불이라도 들고 있었다면 대한민국이라고 해도 되겠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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